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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봉스님은 지금으로부터 약100년전인 1898년 8월 29일 경남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 아랫마을에서 나주임(林)씨 상묵씨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15세 되던 1912년
1월 쌍계사에서 입산출가하여 19세 때 송광사에 와서 남호화상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고,
이듬해인 1917년 4월 8일에 호은(虎隱)화상을 계사로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았다.
1923년 26세때 송광사 강원에서 중등과의 학업을 수료, 그 이듬해 송광사에서 세운
벌교의 송명학교 교원으로 봉직하게 됩니다. 1939년 41세때 일본경도에 있는
임제전문학교를 졸업, 본사에 돌아와 송광사 강원의 강사로 취임 한다. 이 무렵 일본을
비롯한 해외 유학승려들이 출가수행자의 본분을 망각하고 세속에 오염되는 일이 10중
8·9 인 실정이었으나, 스님은 꿋꿋하게 수행자의 몸가짐을 끝까지 흐리지 않았다.

스님은 예산 정혜사의 만공선사 회상과 통영 용화사 도솔암의 효봉선사 회상에서 안거
정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한평생을 송광사에서만 지낸 보기 드문 일정한 주처의 경력을
갖고 있다. 스님은 또 1949년과 1963년, 1970년 이렇게 세차례나 주지직에 취임, 가람수호와
대중 외호에 진력하였다. 특히 6·25사변 후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송광사를 대웅전을 비롯하여 설법전, 명부전,
응향각, 그리고 종각과 차안당 등을 여러 가지로 어려운 여건 아래서도 본사 스님들과 힘을 모아 복구하였다.

1969년 종단의 도제양성 기관인 조계총림이 송광사에 세워질 무렵 구산 방장스님과 뜻을 같이하여 총림설립에 결정적인 역할도 하였다. 그 당시 일부 재적 대처승들의 거센 반발을 무마하면서 꾸준히 추진한 끝에, 오늘과 같은 총림이 있게 되었다. 총림이 개설된 이래 스님은 염불원 회주로 추대되었다.

스님은 많이 노쇠하게 되자 그전까지 거의 거르는 일이 없던 조석 예불과 큰방 공양에 불참하는 일이 잦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 세상을 하직할 준비를 하나하나 해 나갔다. 어느 날은 옷가지와 일용에 쓰던 물건들을 사중에 들여놓거나
이웃에 나누어주는가 하면, 또 어느 날은 목욕을 하고 나서 큰절 각 법당과 비전이며 화엄전에 가서 불전에 하직인사를
드리기도 하였다. 너무 쇠약하여 시자들의 부축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는데도, 서너 차례나 예고도 없이 불쑥
큰방공양에 참례하여 공양대중을 놀라게 하였다.

또 하루는 재무스님을 불러 돈 백만원을 사중에 내놓으면서 그중 50만원은 장학기금으로 나머지 50만원은 법당건립에
써달라고 부탁하였다. 스님은 마지막 돌아가실 때까지도 인재양성과 가람수호에 지극한 관심을 보이셨다.
그리고 한 재속(在俗)제자를 불러서는 서둘러 관을 짜놓으라고 당부하기도 하였다.

1983년 8월 6일 밤 9시 10분, 초저녁 취봉노스님께서는 마침내 마지막 잿불이 사그라지듯이 가을 바람에 풀잎이
눕듯이 86년의 생애를 거두었다. 말년에 보이신 스님의 생활규범은 승보의 도량에 있음직한 청정한 승가의 규범이
아닐 수 없다. 사중의 공유물과 개인의 사물에 대한 개념이 어느 누구보다도 철저하였고 90줄에 계시면서도 조석
으로 한결같은 불전의 근행(勤行)은 오늘 송광사가 승보의 가람으로서 그 구실을 하는 데에 하나의 표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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