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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문정로에 대해
글쓴이 안녕하세요 등록일 2023-06-17
첨부파일 조회수 424

인터넷에서 본 글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선문정로(禪門正路)를 반박한다

육조(六祖) 혜능(惠能)이 개혁한 선(禪)이 당(唐)과 송(宋)시대에 불교가 꽃을 피우게 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면서 고려에도 전해지게 되었다. 오늘에까지 전해져 이어온 이 선법이 달마조사가 가르친 선법의 맥인지, 선의 구경처가 오늘의 수행자들에게도 공유되고 있는지 선문정로(禪門正路)를 통해 알아보기로 하자.

저자 성철(性徹)은 우리나라 현대불교에서 가장 빼어난 고승(高僧)이며 학승(學僧)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스님이시다. 또한 평생 철저한 수행을 통해 큰스님으로 불려 왔으며 조계종 종정을 지내기도 하였는데 자신의 법어를 모은 〈본지풍광〉과 〈선문정로〉 등 두 권을 펴내고 “부처님께 밥값을 하였다”라며 스스로 흡족해했다고 한다.

성철스님은 머리말[緖言]에서 “선문은 견성이 근본이니 진여자성을 철견함이다. 자성은 그를 엄폐한 근본무명, 즉 제8아뢰야의 미세망념을 영절하지 않으면 철견하지 못한다”라고 엄밀하게 견성을 정의하였다.

“이 견성은 즉 돈오이니 오매일여(寤寐一如)와 내외명철(內外明徹), 무심무념(無心無念), 상적상조(常寂常照)를 내용으로 하여 10지 등각(等覺)도 선문의 견성과 돈오가 아니다”라고 견성 경지에서 드러나는 현상까지 열거하였다. “견성의 방법은 공안을 참구함이 가장 첩경”이라는 성철스님은 “불조(佛祖) 공안은 극심 난해하여… 오직 대원경지로서만 요지(了知)하나니, 공안을 명료(明了)하면 자성을 철견한다”라고 불조(佛祖)의 공안이라 칭하여 조사(祖師)들을 은연중 부처와 같은 지위로 격상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돈오점수가 비조계적자(非曹溪嫡子)라며 고려시대의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을 비방한다. 보조국사가 수행방법을 돈오점수라 한 후 별일 없이 전해져 내려왔는데 7~8백 년이 지난 시점에 성철스님이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스님은 돈오돈수가 올바른 방법이고 돈오점수는 이단이라는 것이다. 돈오돈수와 돈오점수는 오랫동안 수증론(修證論)의 논란이 되어왔다고 한다. 따라서 육조 혜능의 맥을 이어왔다는 성철스님의 비판을 당연시하는 한편 상당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성철스님은 이 책이 출판되자 흡족해하였다고 하는데 과연 부처님께 밥값을 할 만한 업적이었을까.

1. 견성이 곧 성불이라 하는데

본문 첫 페이지에 종경록(宗鏡錄)을 인용하여 ‘견성을 하면 즉시 구경의 무심경계가 나타나서 약과 병이 모두 없어지고 교(敎)와 관(觀)이 다 쉬게 된다’라는 구절을 게시하고 성철스님이 주석을 달아 설명하고 있다.

“…극히 미세한 3세 망념까지 다 없애면 확철히 깨쳐 진여 본성을 환히 본다. 일체 망념이 전혀 없으므로 무념 또는 무심이라 부르니 이것이 무여열반인 묘각(妙覺)이다”라고 하였다.

자신의 설명을 보충하기 위해 기신론(起信論)을 인용, ‘견성은 미세망념이 완전히 없어진 구경각’이라 하였고 원효와 현수의 ‘부처의 지위는 무념’이란 구절을 들어 거들게 하였다. 이어 성철스님은 “온갖 병이 동시에 쉬는 구경 무심지만이 견성이며 이것이 가장 높은 대도를 철저히 증득하고 배움이 끊겨 하릴없는 한가로운 도인의 마음경계”라 하였다.

종경록을 인용하면서 “삼세육추의 모든 망념이 단박에 없어지고 변함없이 항상 하는 진여본성을 활연히 증득하니 이것이 망념을 없애 진여를 증득한 구경 무심, 즉 견성이다”라고 밝힌 스님은 “이런 이가 천상과 인간에서 비할 데 없이 존귀한 대각여래이며, 인도와 이 땅에서 법의 등불을 이어 온 정안종사”라 하여 서천 28조와 중국의 정안종사라는 조사들과 자신을 모두 여래의 지위로 격상시켰다.

종경록과 논소들을 원용한 성철스님은 부처와 조사를 정통으로 잇는다는 문익선사의 3세 적손인 종경록의 저자 연수(延壽)선사에 대해, 임제(臨濟)의 정통 법맥인 중봉선사가 “고금을 통틀어 천하의 사표는 연수가 아니면 그 누구란 말인가”라며 찬탄하였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종경록에 수록하고 있는 내용들은 고금을 통틀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종문의 확정된 견해라고 분명히 말하였다.

“… 등각 위에서 극히 미세한 망념인 근본 무명을 없애면 활연히 깨달아 진여 본성을 환히 보니 이것이 구경각인 성불”이라면서 스님은 “대승불교의 총론이라 할 수 있는 『기신론』에서도 견성이 곧 구경각이며 성불”이라 하였다고 주장한다.

전등록(傳燈錄)의 ‘분주(汾州)와 운문(雲門)은 삼학을 통달한 절세의 정안종사’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10지 보살도 견성하지 못했다는 것은 분주, 운문뿐 아니라 종문 정전의 공통된 원칙이며 구경각인 여래지만이 견성”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말 중 종문(宗門)에서는 “십지 이후에 아뢰야식의 미세한 망상을 영원히 끊어야만 견성”이라 한다고 성철스님은 확언하였다. 또한 “…화두공부가 꿈속에서도 한결같이[夢中一如] 되면 화엄경에서 말하는 7지이고 나아가 깊은 잠속에서도 한결같으면[熟眠一如] 아뢰야식의 미세망상 가운데 자재보살의 지위”라며 오매일여(寤寐一如)의 내용을 덧붙였다.

 

2. 가장 높은 바른 깨달음은?

최상의 경지에 대해서는 대열반경을 주로 원용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여야 불성을 정견(正見)함을 얻느니라”, “무상정각을 성취하면 아성(我性)을 원만히 깨쳐[圓證] 분명히 알게 된다” 하였다. 80화엄경은 “모든 망념이 끊어지면 이것이 견성이며 무상정각”이라고 주장하였다.

“열반경과 화엄경의 두 경전에서 모든 중생이 불성을 본래 갖추고 있다고 밝힌 것은 인간이 본래 갖는 참다운 가치, 즉 절대성을 밝혀준 유사 이래의 일대 선언”이라고 말한 성철스님은 “이로써 인간은 본래 갖추고 있는 절대성을 개발하여 위 없는 도를 성취하는 영원한 살길을 얻게 되었다”라고 선언한다.

대열반경에 실렸다면서 “보살 지위의 마지막인 제10지에 도달한 보살도 오히려 불성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데…”라며 “10지 성인은 구름 일 듯 설법을 하지만 견성하는 데는 얇은 비단을 가리고 보는 것과 같다”라고 말해 10지를 완성한 것처럼 언행을 하였다.

스님은 이어 “이렇게 종문의 정안종사들은 10지 대성(大聖)도 견성하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꾸짖었다”라고 인용하고 “… 10지 성인들이 어찌 조사에 도달하겠는가!”라 하여 마치 조사들이 모두 보살10지 품계를 뛰어넘은 것으로 위계를 격상시켰다.

성철스님은 또한 대열반경의 해설에서 “예부터 선문의 정안종사들 가운데 아뢰야의 미세망념을 완전히 끊어서 구경 무심지에 이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라고 단언하고 “종문에서는 미세 망상을 제8 마계라 하여 이를 타파해야만 바른 안목을 갖춘 사람으로 인정한다”라고 하여 조사들이 역시 보살10지를 거쳐 구경지에 이르렀다고 자기 집안을 한껏 치켜세우고 있다.

 

3. 조사들의 수행법

이상과 같은 성철스님의 호방한 말씀들이 과연 그러한지 확인해 보자. 종문의 정안종사들이 모두 견성하여 해탈을 이루었다면 그 수행법을 들여다보면 알 것이다. 우선 종조(宗祖)인 육조 혜능의 깨달음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성철스님이 번역한 돈황본 육조단경에 의하면 땔나무 장사꾼인 혜능이 어느 날 관숙사에서 나무를 팔고 문을 나서는데 한 손님이 읽는 금강경 소리를 듣게 된다. 혜능은 한 번 들음에 마음이 밝아져 문득 깨치게 되자 황매의 빙무산에서 오조(五祖) 홍인화상을 만나고 그 후 여덟 달 가량 방아를 찧었다.

홍인대사는 어느 날 게송을 지어 오는 문인들 중 큰 뜻을 깨친 자를 택하여 가사와 법을 부촉하고 자신을 이을 육대 조사로 삼겠다고 공언하였다. 상좌인 신수에 답한 혜능의 게송을 본 오조스님은 밤중 삼경에 혜능을 불러 금강경을 설해 주었다. 역시 한 번 듣고 말끝에 문득 깨친 혜능은 그날 밤으로 법을 전해 받으니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혜능이 깨달았다고 하는 현상과 돈오의 실체이다. 능가사자기에 따르면 5조 홍인의 1천여 문인 가운데 10대 제자로서 비록 후 순위이지만 혜능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는 사실로 보아 식견과 인품이 탁월하였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혜능에게 수행법은 물론 여러 여건이 만만치 않아 불만이 많았던 듯하다.

당시는 능가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시대였다. 능가선의 수행법은 ‘제불(諸佛)의 마음[心]이 제일’이란 능가경의 가르침에 따라 불심(佛心) 염하기를 일행삼매(一行三昧)의 방법으로 시행하였다고 한다. 일행삼매란 염불에 전념하여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하는 방법인데 간단없이 이를 여리(如理)하게 입에 달고 산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가 보다.

더구나 ‘일행삼매에서 법계에 그대로 합치하여, 물러섬이 없고 무너짐도 없으며 사의(思議)함도 없으면 공•무상•무원의 삼해탈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하였으며, ‘보살10지를 넘어 궁극으로 하니 단지 묵심(黙心)하여 스스로 깨달아 알 뿐’이라 하여 수행이 한도 끝도 없이 무한한 듯하니 답답하고 막막함이 그지없었으리라.

이미 수행자들 사이에서는, 깨닫는 사람을 보지 못한 탓인 듯 당시에도 ‘도(道)는 길 없는 길’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또한 10대 제자이긴 하지만 층층시하로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혜능은 결국 오조 휘하를 떠나게 된다.

이후 육조단경에 담긴 혜능의 대처 방법을 찾아보자. 오조로부터 법을 전해 받았다는 그 날로 변방의 산골인 고향 영남 땅으로 돌아왔다. ‘혜능이 이곳에 와서 머무른 것은 모든 관료와 도교인, 속인들과 더불어 오랜 전생부터 많은 인연이 있어서’로 기록되어 있다. 무식한 나무꾼이었던 사람이 전생부터의 인연이란 구절은 납득하기 어렵다.

혜능은 자신이 배웠던 수행방법을 모두 뜯어 고치고 있다.

“…미혹한 사람은 법의 모양에 집착하고 일행삼매를 고집하여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곧은 마음”이라 한다며 “망심을 제거하여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일행삼매라 한다. 만약 이와 같다면 이 법은 무정과 같은 것이므로 도리어 도를 장애하는 인연”이라며 수행의 바탕부터 비난한다.

혜능은 “일행삼매란 일상시에 행주좌와에 항상 곧은 마음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정명경』을 인용하여 ‘곧은 마음은 도량이요 정토’라 전제하면서 “입으로는 일행삼매를 말하면서 곧은 마음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부처님 제자가 아니니라”고 단언한다. “오직 곧은 마음으로 행동하여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일행삼매라고 한다.”라 하였다.

‘불심을 여리하게 염하라’는 수행을 말하는 일행삼매를 혜능은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요, 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불교의 최고 이상향이므로 수행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하였다. 참으로 교묘한 말장난이다.

“…어떤 것을 좌선이라 하는가? …이 법문 가운데는 일체 걸림이 없어서 모든 경계 위에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앉음[坐]이며 안으로 본래 성품을 보아 어지럽지 않는 것이 선(禪)이니라”고 하여 선의 기본이 좌선이라는 철칙을 깨뜨리고 행주좌와 어느 자세로도 수행하는 것이 선(禪)이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귀찮고 권태로운 염불과 면벽 좌선을 피할 수 있는 규칙을 새롭게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수행법일까. “자기 성품의 마음자리를 지혜로 관조하여 내외명철하면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나니 만약 본래 마음을 알면 곧 본래 해탈이요 곧 반야삼매요 반야삼매임을 깨치면 곧 무념이니라.”

이것이 혜능이 말하는 견성인데, 능가선에서는 수행자가 부처의 경지로 가는 데 전의라는 과정을 두고 있다. 전의란 사람의 의식이 순식간에 수승한 부처의 의식으로 바뀌고 바로 삼매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이 같은 전의 과정을 혜능은 견성이라 바꿔 부르고 있다.

혜능은 또 “…어찌 진여의 본성을 단박에 나타내지 못하는가?” 하고 돈법(頓法)을 크게 강조한다. 능가선의 공부 방법은 천천히 이뤄나가는 점오(漸悟) 점수(漸修) 방법이었으므로 지긋지긋하고 한량없는 수행에 대한 해방을 선언하는 듯한 의구심이 든다.

돈법은 순식간에 의식이 바뀌는 전의에 착안한 것이겠지만 이 돈법이란 세상의 이치에도 맞지 않고 사리에도 전혀 맞지 않는다. 능가경에서도 “…점차 생긴 것이라든지 즉시에 생긴 것이라든지 하는 지견을 내는 데서 떠나야 한다”라고 미리 예견한 듯 적시하고 있다.

혜능이 능가선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수행법을 개혁하면서 불가피하게 소의경전인 능가경을 금강경으로 바꾼다. 첫째는 능가경이 제시하는 방법을 수행자들이 배울 수 있다면 소의경전을 바꿀 필요가 없었겠지만 대부분 따라 할 수 없다는 특수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개혁한 내용들이 능가경에서는 모두 옳지 않은 방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또 다른 변경 이유가 있었다. 능가경은 난삽한데다 분량도 두꺼운데 반해 금강경은 분량이 적어 기복신앙을 선호하는 대부분의 신도들에게 환영받은 점이다. 금강경이 수행법을 기록한 내용이 없다는 부분도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4. 혜능은 이처럼 무리한 선택을 왜 하였을까

4조 도신이 전의하였다고 하여 혜능은 그의 공부 과정을 꼼꼼히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육(靈肉)이 특별한 혜택을 받지 않는 한 능가경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였고 또한 혜택을 받는다 하더라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계책이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해탈이란 세계는 혜능을 비롯한 수행자들 누구도 모르고, 앞으로도 알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으리란 생각으로, 따라서 이를 추궁당할 일이 없으리라는 나름대로의 확신이 있어 이 개혁을 밀어붙였을 것이다. 게다가 수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변경된 방법이 이해하기 쉽고, 어렵지 않아 시도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755년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자 혜능의 제자 하택 신회는 도첩을 팔아 황실의 재정을 보조하는 등 황제의 신임을 얻는다. 혜능 사후 20년이 지나 황실이 집행한 대집회에서 신회는 남종(南宗)을 선종의 정통으로, 북종(北宗)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데 성공한다. 이 집회에서 신회는 선종의 제7조에 오르면서 혜능이 자연스레 6조를 차지하게 된다.

불교는 혜능 이후 크게 변화한다. 세월이 흘러 선종의 수행방법은 조주(趙州)와 임제(臨濟)를 거쳐 대혜 종고(宗杲)에 이르러서 화두선(話頭禪)으로 바뀌게 된다. 한편 4조 도신의 문하를 중심으로 조성된 조동종(曹洞宗)이 능가종의 명맥을 유지하다가 송말(松末) 굉지(宏智)의 묵조선(黙照禪)으로 기세를 떨치는 듯하였다.

대혜가 “귀신굴 속에 앉아 있으면서 고요하게 항상 비추어 본다고 하며 그것을 열반이라 하며…”라고 묵조선을 신랄하게 비난하자 굉지는 “공안이나 씨부렁대면서 한꺼번에 견성하고 나면 도깨비 방망이라도 얻는 듯하여 지견(知見)만을 내세운다…”라고 대혜에게 응수하였다.

이렇듯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듯하였으나 결국 수행하는 방법을 찾지 못한 굉지가 대혜에게 굴복하자 묵조선은 간화선에 흡수되고 말았다. 이로써 달마가 가져온 선교의 해탈추구라는 본질은 사실상 와해되고 중국의 새로운 문화로 정착하기에 이르렀다.

 

5. 무념이 바른 종지일까

그렇다면 혜능과 혜능계의 구경에 대한 가르침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이 법을 완전히 깨친 이는 생각이 없다. 기억과 집착이 없어서 망념이 일어나지 않고 자기의 진여본성을 사용하여 지혜로 관조하므로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으니 이것이 견성이며 성불하는 길이다.”〈壇經〉

성철스님의 선문정로 무념의 바른 종지[無念正宗] 제하 첫 머리가 단경에서 취사선택한 이 문장이다. 풀이하기를 “망념을 없애고 진여를 깨친 구경 무심을 무념이라고 한다. 이 무념이 즉 무생이며 돈오이며 견성이며 성불”이고 이를 깨친 이는 부처의 경계라고 설명하였다.

“만약 진정한 반야인 관조(觀照)가 눈앞에서 일어난다면 찰나 간에 망념은 멸한다. 그리하여 자성을 알게 되면 한번 깨쳐서 즉시에 불지에 도달한다.”〈壇經〉

“망념이 모두 없어지면 자기 본성을 분명히 보고 자성을 분명히 보면 그것이 정각이며 무념이니 지위와 계급을 거치지 않고 구경각인 부처 지위에 단박 들어간다”라고 부연설명한 성철은 “한번 뛰어 곧바로 여래지로 들어가는 묘한 비결로서 다른 종파들이 뒤따를 수 없는 선문의 특징”이라고 자랑까지 하고 있다.

“…무념법을 깨친 자는 만법을 통달하여 제불의 경계를 본다고 하였으니 만약에 무념 법문에 들어오면 성불이 찰나 간에 있음을 알겠다.”<宗鏡錄> “…등각이 금강심으로 가장 미세한 망념인 제8아뢰야를 모두 끊고 묘각에 단박 들어감을 견성했다, 성불했다고 하니 이것이 돈오이다… 육조의 ‘생각 없는 바른 깨침[無念正悟]’은 구경의 부처 지위로서 원증 돈증의 증오이며 견성의 표준이다”라고 성철은 강조한다.

무념이 과연 견성이고 성불일까. 단경이나 성철스님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근거는 오로지 달마가 전수한 능가경에만 있다. 능가경에 “…미래에 근(根)과 경계가 멸하면 열반에 이르게 된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妄計未來諸根境滅 以爲涅槃].”(卷第二集一切法品) 라는 글귀가 보인다.

’근과 경계가 멸한다‘는 말은 근(根)은 감각기관을 뜻하고 경계(境界)는 감각기관의 대경(對境)이므로 6근과 6경, 즉 12처[十二處]를 말함이다. 십이처는 마음의 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마음이 멸하면 곧 무심이 된다. 따라서 능가경은 ’무심이 열반이나 해탈이라 주장한다면 이는 잘못된 방법이며 꾀일 뿐‘이라며 무심이 열반이 아니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능가경이 세존 멸 후 2~3백 년쯤 출현했음을 감안하면 이런 지적이 있다는 것은 그 당시에도 무심이 해탈이라며 세상을 미혹시켰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이제 수행과정에서 무념이 발현되는 현상들을 순차적으로 알아보자.

무심이나 무념의 경우 첫째 오감의 임계점에 도달하게 되면 ’생각이 없었다‘라는 생각이 들어 무심한 순간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둘째 무상정이나 멸진정[二無想定]에 들면 상당한 시간 삼매에 들게 되어 무심을 경험하는데 능가경은 이를 2~3승의 삼매라며 극히 조심할 것을 당부하는 경지이다. 셋째 전의 후 삼매에서의 무심으로, 이는 무심이지만 관조(觀照)하고 있는 경우이다. 넷째 공부가 모두 끝난 후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공중무색(空中無色) 경지에서의 무심이다.

혜능과 성철스님은 몇 번째 무심을 열반이라 일컫는 것일까. 첫 번째 무심은 인간의 한계상황에서 느껴지는데 종교인들은 이를 절정(絶頂)체험이라 부른다. 두 번째 무심은 무상정(無想定) 또는 멸진정(滅盡定)이라 하여 생각이 없는 무심상태를 말한다. 이무상정(二無想定)의 무심은 쿤달리니가 각성되어 깔리 상태에서 정화되어 두르가의 초의식 상태가 되면 체험하는 현상이다. 두 스님의 수행경력으로 보아 쿤달리니와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으므로 첫 번째에만 해당할 뿐 두 번째의 무심과는 인연이 없다.

세 번째는 삼매에 들어 무심상태가 되는 경우이다. 이는 쿤달리니가 완성한 다음 이무상정을 지나서 전의하여 삼매에 들었을 때의 체험이다. 네 번째 무심의 경우도 쿤달리니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므로 두 스님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이상 네 가지 이외에 또 한 번의 무심이 있다. 이 무심은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최고 단계인 공중무색(空中無色)보다 더 깊숙한 경지이다. 제9아말라식(阿末羅識)이 발현하는 다섯 번째의 무념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경지이다.

 

혜능은 “진정한 반야인 관조(觀照)가 눈앞에서 일어난다면 찰나 간에 망념은 멸한다. 그리하여 자성을 깨쳐서 즉시에 불지에 도달한다”라고 큰소리 쳤는데 이를 설명한 성철은 “한번 뛰어 곧바로 여래지로 들어가는 묘한 비결”이라고 맞장구치고 “다른 종파들이 뒤따를 수 없는 선문의 특징”이라고 자화자찬한다.

‘관조가 눈앞에 나타난다’는 의미는 전의하여 바로 삼매로 이어지는 가운데서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삼매에 들면 아주 밝고 맑은 가운데 무엇인지 은밀하게 움직인다는 느낌을 포착하게 된다. 이 알아차리기 힘든 무엇을, 그것만을 골똘히 쳐다보는 행위를 관조라 한다.

그런데 ‘관조가 일어나면 찰나 간에 망념이 멸한다’고 하였다. 관조하는 행위와 망념이 멸하는 것은 관계가 없다. 이 과정에 대해서는 어떤 경전도 설하지 않으므로 혜능으로서는 알 수 없어야 하는 내용인데 아마 4조 도신이 설한, 전의하여 삼매에 드는 과정을 전해 듣고 생각해낸 듯하다.

쿤달리니 완성 후 이무상정에서 처음 생각이 단절된 것을 의식하게 되는데 이 현상에서 망념이 멸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음 과정에서 전의하게 된다. 현재의 의식이 바뀌어 부처 세계의 의식인 근본지(根本智)로 자리 잡는 현상인 전의는 갑자기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돈(頓)의 의미와 일치한다.

따라서 혜능이 돈오를 차용했을 수 있지만 찰나 간에 망념이 사라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定)이 끝나면 곧바로 의식이 복원되는데 견성이라면 육조단경과도 합치하지 않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

어쨌든 삼매에 들어 있던 순간은 의식이 잠복해 있다가 삼매에서 나오는 순간 되살아난다. 더욱 진력하여 화엄경의 보살 10지, 즉 공중무색의 경지에 이르면 식이 진멸(眞滅)하게 된다. 이 경지를 혜능이 단박에 들어가는 구경지라 표현한다면 의미상 맞는 말이지만 보살10지인 공중무색의 경지에는 거쳐간 사람이나 그 흔적이 없으므로 거짓임이 분명하다.

 

“이 법을 완전히 깨우친 사람은 생각이 없다. 기억과 집착이 없어서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다.” ‘무념의 바른 종지’의 첫째 문장에 실린 구절로 망념이 사라지면 생각과 집착이 없고 과거의 일들인 기억까지 없어진다고 혜능이 말한다.

부처인 석가모니와 가깝게는 4조 도신이 깨달은 사람으로 사는 모습을 자세히 전해 들었음이 분명한데 그 두 사람이 기억과 집착도 없이 중생교화와 대중생활을 이끌었다고 혜능은 보았던 것인가. 그리고 성철스님도 견성하였다고 일컬어지는데 이 내용에 동조하여 가장 두드러지는 선문정로 서두에 강조하였을까.

그렇다면 혜능 자신도 과거의 기억이 사라진 채 생각 없이, 또한 아무런 집착 없이 썩은 나무 등걸처럼 생활하였을까. 깨달은 자는 진여의 지혜와 현상계를 분별하는 지혜, 즉 근본지(根本智)와 후득지(後得智)를 갖춰 여생이나 중생교화에 기억과 적당한 집착을 활용하면서도 전혀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까.

성철스님이 사용하는 원증⦁돈증⦁증오 등은 능가종에서 사용하던 용어이다. 혜능의 대를 잇는 조사들은 자신이 쓴 논소(論疏)들에서 증(證)자를 포함한 낱말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하였을까.

 

6. 조사들의 수행과정

선문정로에 기록된 해탈 전 수행과정인 8~9장의 오매일여(寤寐一如)와 사중득활(死中得活)을 중심으로 들여다보자.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영대(靈臺) 지성이란 것이 있어서 보고 듣고 하며 오온의 몸속에서 주인 노릇을 하니, 이런 견해를 가지고 선지식을 자처한다면 크게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너에게 묻겠는데 만약 소소영령함을 진짜 너라고 인정한다면 깊이 잠든 때는 어째서 소소영령함이 없는가? ……” (玄沙 備)⦁<傳燈錄>

현사스님이 말하는 소소영령한 영대 지성의 우리말 표현인 ‘밝고 맑은 신령스러운 기운’이 온몸과 마음 가득히 며칠 동안 지속적으로 느껴지는 상태를 조사들은 오매일여라 하는 듯하다.

성철스님은 원오(圜悟)와 대혜(大慧) 간의 문답에서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오매일여는 몽중위와 숙면위 두 가지가 있다. 꿈속에서도 일여한 몽중위는 제6 의식의 영역으로서 교가의 7지에 해당하고 꿈도 없는 깊은 잠에서도 일여한 숙면위는 제8 아뢰야식의 미세한 망상에 머물러 있는 8지 이상의 자재보살들과 아뢰야식의 미세망상을 영원히 여윈, 진여가 항상한 부처의 지위를 말한다.” 대혜가 말하는 상태는 몽중일여라고 성철은 자신 있게 설명한다.

성철스님의 설명은 계속된다. “오매일여를 믿지 않는 것은 대혜만의 병통이 아니라 수도하는 사람에게는 고금에 공통하는 병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견으로 오매일여의 실지 경지를 부정하고 감히 입을 크게 열어 선을 말하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라고 한탄하면서 “만일에 담당과 원오 같은 눈 밝은 종사를 만나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다면 뒷날 크게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위안하였다고 한다.

스님은 계속 오매일여를 강조하였다. “대혜가 오매일여를 실제로 체득하고는 ‘자나 깨나 한결같다는 부처님 말씀이 진실이요 거짓말이 아니었다’고 찬탄하였으며 ‘그 은혜는 분골쇄신해도 다 갚을 수 없다’며 감격하였다”라고 마치 자신도 오매일여를 겪은 것처럼 전언하고 있다.

 

오매일여라는 신령스러운 감정을 성철스님이 이처럼 강조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화두에 전념하는 수행자가 이 같은 감정을 과연 느끼고 있을까. 10여 년 전 선문정로에 오매일여가 실리면서 불교신문에 이에 대한 질의와 토론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런데 여기 참여한 사람들이 이름있는 학자나 스님들뿐이었다. 이를 증명해야 하는, 또한 할 수 있는 수행자는 한 사람도 참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성철스님의 주장에 동조하며 분명한 결론을 맺지 못한 채 유야무야하게 끝났었다. 현사 비(835~908)는 선가오종(禪家五宗)의 운문(雲門)스님의 스승으로, 능가선에서 전의 직전에 체험하는 오매일여 같은 과정을 언급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혜능이 1백여 년 전에 능가선법을 흩트려 놓았으나 당시는 이 선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선사(禪師)라고 하면 능가선 계통 선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원오와 대혜(1088~1163)는 사제 간으로, 현사선사와는 2백 년 차이가 있다. 특히 대혜는 능가선법의 후신인 묵조선의 굉지(宏智)와 수행법의 차이로 극렬한 논쟁을 벌여 결국 굉지의 항복을 받아내어 묵조선을 간화선으로 일통하게 한 주역이다. 그런 대혜가 오매일여를 체득하고 견성하였다고 성철은 주저하지 않고 말하고 있다.

“수행자가 오매일여를 믿지 않는 것은 수도하는 사람에게는 고금에 공통하는 병”이라고 탄식하면서 화엄경의 보살 7~8지에 해당하는 경지라며 오매일여를 두둔하고 있다. 그러나 오매일여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한국 불교의 수행자들은 알 수 없었다. 혜능의 선법과 간화선법으로는 능가선 수행법과는 방향이 너무 달라 그 감각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과정을 잘 알고 있을 성철스님이 원오와 대혜 간의 대화에서 “오매일여에 몽중일여와 숙면일여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한 생각도 나지 않고 앞뒤가 끊어진 승묘(勝妙)경계도 7지 무상정과 8지 멸진정의 차별이 있다”라고 조작되었을 논소의 주장들을 언급하고 “여기서 철저히 깨쳐 확연히 살아나야만 바른 안목이라고 인가하는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언구를 의심하지 않음이 큰 병’이라는 원오의 말을 반복한 스님은 “크게 죽었다가 크게 살아나기 전에는 불조 공안의 깊고 묘한 뜻을 알 수 없다”라고 말한다. 불조(佛祖)라 하여 조사들을 부처와 동격으로 격상시키며 대혜까지도 그냥 견성한 것이 아니라 오매일여와 승묘경계 과정 등 모든 능가선 수행과정의 구색까지 갖춰가며 구경각을 성취했다며, 화두선의 견성을 능가선의 전의의 경지와 하나로 인식하도록 천연덕스럽게 오도하고 있다.

여기서 성철이 거론한 오매일여나 승묘경계는 사실상 달마가 전한 방법, 능가선의 전의하기 전까지의 단계에서 일어나는 과정의 형태를 말한다. 무슨 방법으로든 해탈, 열반 등 능가선법에서 말하는 구경지에 화두선의 조사들을 어떻게든 꿰맞춰야 하는 성철스님의 고뇌가 알 것만 같다.

오매일여의 몽중일여와 숙면일여를 스님은 7지와 8지로 인정했는데 나는 5지 난승지를 전의로 간주하므로 4지 정도로 여긴다. 그리고 승묘경계는 4~5지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멸진정과 무상정은 이를 겪은 수행자의 표현의 차이일 뿐 같은 경지여서 보살 4지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들 경지를 4~5지로 보는 것은 오매일여와 같은 감정을 느낀 후 2무상정을 체험하게 되고, 크게 죽었다가 크게 살아난다는 사중득활(死中得活)은 2무상정을 체험하고 난 뒤 전의할 때까지 빠르면 1년 늦으면 2년까지도 명상에 별다른 진전이 없는, 답답하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아마 이 기간을 일컫는 것 같다. 그런데 이와 같은 능가성의 경지들의 표현들이 화두선에서도 나타나는 것일까.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7. 견성은 어떤 모습일까

견성의 모습을 ①크고 둥근 거울 같은 지혜[大圓鏡智]로, ②안팎이 환히 밝음[內外明徹]과 ③항상 고요하고 항상 비춤[常寂常照]이라 표현하였다. 대원경지란 거울에 한 점 티끌도 없이 삼라만상이 자체 그대로 비치어 모자람이 없는 것처럼 원만하고 분명한 무루의 지혜를 의미한다.

성철스님은 10장 대원경지에 주석을 달아 “제8아뢰야식인 미세유주를 다 없애 진여 자성을 환히 보면 구경무심인 대원경지가 그대로 드러나니 이것이 크게 죽었다 다시 살아난 본래 면목”이라 말하고 “…이 대원경지를 성취해야 견성이니… 불조정전은 전부 이 경지를 종문의 근본으로 삼았다”라고 하였다.

벽암록에서 인용한 10장의 두 번째 문장 무공용행(無功用行)에 대한 부분은 글 쓴 사람이나 번역한 사람 모두 이해가 부족한 듯하다. 사전(辭典)은 ‘일하려고 미리 마음속에서 계획하고 분별하는 일이 없이 자연에 맡긴다’라고 설명하며, 능가경은 무공용이란 ‘보살8지에서 그냥 힘들이지 않고 기다리면 공부가 진행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경의 기록에 따라 보살 7~8지를 그대로 원용했겠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전의하기 전부터 구경지에 다다를 때까지 대부분의 과정에서 무공용행은 실행되고 있었다.

전의가 지극히 어려워 보살5지가 ‘난승지’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지만 전의하면 의식이 바뀌면서 바로 삼매에 들어가게 된다. 삼매 속에서는 의식이 정지된 상태이므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다. 특히 전의 이후의 과정에서 무공용행은 수행 자체를 주도해 나간다. 마치 학교의 교과과정처럼 선생이 가르치는 것을 학생들은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깊은 적정 속에서 미세하게 움직이는 무엇인가에 온 신경이 집중된, 바로 지관(止觀)이며 관조(觀照)하는 상태, 다시 말하면 이 같은 삼매의 상황에서 마치 철저히 준비된 교과과정을 펼치는 것처럼 눈앞에 보여주며 깨닫도록 하는 힘이 무공용행이다. 따라서 전의한 이후로는 그저 가만히 삼매 속에서 지관, 관조하면서 앉아 있으면 보살10지까지, 또한 반야심경의 공중무색까지 저절로 깨우치게 된다.

“지혜로서 관조하여 안팎이 환히 밝아 자기의 본심을 알면, 그것이 곧 근본 해탈인 무념이다.” 11장에서 성철스님은 단경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대원경지로 비추어 안팎이 환히 밝으면 이것이 곧 마음을 아는 것이며 해탈이며 무념이며 견성이니 근본 무명의 검은 구름이 흩어 없어진 증거이다.”

다시 감산(憨山)의 글을 인용하면서 “안팎이 환히 밝은 견성은 식음(識陰)이 영원히 끊어진 큰 깨달음의 가장 높은 과위이다. 화엄경에서는 십지보살은 방편 신통으로 안팎이 환히 밝다고 하였으나 아직 미세한 무명을 다 끊지 못했으므로 이때 안팎이 환히 밝다 함은 제8아뢰야의 밝은 그림자 상이지 진짜 안팎이 환히 밝은 것은 아니다”라면서 ‘안팎이 환히 밝은 무념’에 집착을 보였다. 이 의미는 만약 시간과 공간이 약간이라도 있다면 삼매를 연상시키는데 스님은 삼매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다.

 

12장 상적상조(常寂常照)에서는 “미세무명을 나아가 부수고 묘각의 지위에 들면 대열반이라 이름하니 이 지위에 든 사람은 상적광토(常寂光土)에 거주한다”라며 천태[天台四敎義]까지 인용한 스님은 “확철히 깨쳐 자기 본성을 단박에 보게 되면 안팎이 환히 밝고 고요하며 항상 비추는 구경 무념의 대열반을 원만 성취한다”라고 설한다.

스님은 “미세한 아뢰야식을 벗어나 마지막의 견고한 관문을 깨뜨려 버리면 구경무심인 위 없는 열반이 눈앞에 나타난다”라고 말하고 “크게 죽었다가 크게 살아나고 항상 고요하고 항상 비추어서 밝음과 어둠이 함께하고 선정과 지혜가 균등하니 이것이 견성이며 성불”이라며 아주 익숙한 듯 구경지의 모습들을 정리하였다.

“달마를 정통으로 이은 선문의 거장들은 한결같이 무심무념의 구경각을 원증하였고 돈오, 견성하였다”라는 것이 성철스님이 확신하고 찬양하는 구경지들이다. 이들 조사들이 간화선이라는 뗏목을 타고 그 험난한 파도를 뚫고 피안의 선착장에 모두가 무사히 안착하였다고 한다. 과연 믿어야 할까.

8. 조사들이 깨닫는 순간들

조사들의 가르침이나 성철스님 말씀들이 과연 견성의 깨달음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마조(馬祖)스님이 말하였다. “나는 어떤 때는 그에게 눈썹을 드날리고 눈을 깜짝이게 하며 어떤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고 어떤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 그대는 어떠한가?” 약산스님이 말끝에 활짝 깨쳤다.

⁎동산양개(洞山良价)스님은 무정설법에 대한 문답으로 깨달은 바가 있어 곧 게송을 지어 바쳤다. 이후 개울을 건너다가 다시 깨친 바 있어 오도송을 지었다.

⁎운문스님은 사생결단으로 토굴 안에 들어가려 했고 목주선사는 여지없이 밀어내는데, 선사가 사립문을 닫아버리자 사립문 안에 들여놓았던 운문스님의 다리가 여지없이 부스러졌다. 뼈가 으스러지는 순간 운문스님은 자신이 지른 소리에 진리의 눈이 활짝 열렸다. 운문스님은 선가오종(禪家五宗)의 개창조이다.

⁎어느 날 무심코 마당에 튀어나온 기왓장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 그래서 두 손으로 뽑아 멀리 던졌다. 이 기왓장이 날아가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에 크게 깨달았다. 이 자리는 향엄(香嚴)의 격죽(擊竹) 현장으로 유명하다.

⁎나는 원오스님이 들려주신 “훈풍이 남쪽에서 불어 온다”는 말에서 갑자기 앞뒤가 끊어졌다. … 노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애석하다. 죽어버리고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구나. 언구를 의심하지 않음이 큰 병이니 다시 살아나야만 그대를 속이지 못한다.” 매일 법을 물으러 가면… 아니라고 하였다. 하루는 “나무가 넘어지고 덩굴이 마를 때는 어떻습니까?” 하니 노스님이 “함께 하느니라” 하셨다. 나는 이 말에 환하게 이치를 깨달았다. 이 깨달음의 주인공은 선교의 수행법을 간화선으로 일통한 대혜의 기록이다.

성철스님이 달마를 정통으로 이은 정안종사라며 칭송해 마지않는 이들의 깨달음의 현장들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명상가 김춘호씨의 박사학위 논문 『한국 명상가들의 절정체험』에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어느 날 낮잠을 자고 있는데 꿈속에서 힌트가 되는 소리가 들렸어요. 깨면서 그 소리를 읊조리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을 해결해 버렸어요.

⁕다 내가 지어낸 생각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가졌던 마음, 종교의 틀과 깨달음에 대한 논리 속에 제한적으로만 사용해 왔기에 내 마음 역시 그런 틀 안에서 그렇게 작동해 왔음을 알았습니다. 그때 내 안에서 솟구쳐 나오는 너무나도 깊은 큰 사랑을 체험하였습니다. 그 크신 사랑은 별이 되어 하늘에서 빛을 발했고 텅 빈 채 온 우주에 충만했습니다.

⁕생각이 텅 비어 생각이 올라오지 않는 상황이 되는 순간 지켜보는 ‘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날 나는 과거의 모든 마음으로부터 해방되어 나란 자각 속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은하수도 되고 산이 되고 우주 전체가 되었습니다. 그 체험 속에서 과거의 저는 환상 속의 개념에 불과했으며 저는 무한히 크고 장엄한 우주 속에서 하나의 큰 생명이 충만하게 자리했음을 자각했습니다.

⁕생각 지우기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남은 ‘지켜보는 이놈’도 생각 아닌가? 하고 알아차리는 순간 자동으로 지우기가 작동되며 바로 그놈까지 지워버린 겁니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주체감마저 지워지니 완전한 블랙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마치 ‘아무것도 없음’, 또는 ‘무(無)’에 존재가 몰입된 것과 같았습니다. 내가 없는 무아라는 것이 이제야 무엇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이상은 명상 애호가들이 화두선과 유파(流派)의 행법에 따라 수행한 최고의 경지들을 모은 것들이다. 이 절정의 체험과 조사들의 깨달음의 체험과는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화두의 성자로 일컬어지는 대혜의 말을 들어보자. “의식의 집중과 정신의 극도의 긴장 속에서 궁극에는 그 의식이 무의식으로 통하고 그 무의식은 그대로 의식 밖으로 뛰쳐나와 깨달음의 체험으로 이어진다”라고 하였는데 성철은 대혜의 말을 받아 “공안을 밤낮으로 참구하여 게을리하지 않으면 오매일여의 깊은 경지에서 활짝 깨쳐 진여 본성을 분명히 보게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성철은 ‘불조의 공안은 대적광 삼매에서 나온 크고 묘한 기틀과 작용’이라며 조사를 격상하여 부처와 동일시하였으며 “무심무념, 상적상조, 원증견성, 대원경지의 금강 정안이 아니면 공안의 귀결처는 아득히 알 수 없다“라며 공안을 마치 부처께서 직접 만들어 사용하신 것처럼 최상의 찬사를 보냈다. 성철스님이 자랑하는 부처와 달마 그리고 6조 혜능의 적통을 이어받아, 또한 직접 수련하여 체험하고 증오하였기 때문에 이처럼 자신만만 해하는 것인가.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이 팔상록(八相錄)을 통해 밝힌 정각(正覺)과 견성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자. ”후세에 선종에서 견성(見性)이라는 것과 여기서 말하는 정각(正覺)이라는 것은 다르다. 견성은 자기에게 있는 불성의 본바탕을 보는 것인데 그 본바탕은 모든 부처님과 꼭같다. 여기에 말한 바와 같은 육신통(六神通), 십력(十力),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 사무소외(四無所畏)와 같은 만덕의 묘용이 다 나타나지는 못한다. 선종에서 말하는 견성이 곧 석가모니불의 견명성오도(見明星悟道)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이어 보조국사께서는 “선사(禪師)가 참선하다가 견성한 것은 자기의 불성을 발견한 것이니 그 불성을 발견한 뒤에 자꾸 닦아서 최후에 부처가 완성되도록 하라[頓悟漸修]”고 가르친 것은 만고불역의 큰 교지이다. 이 두 큰 스님들의 생각을 실수(實修)해 본 수행자라면 바로 진(眞)과 가(假)의 판단이 설 것이다.

대혜가 오매일여를 체득한 후 “자나깨나 한결같다는 부처님 말씀이 진실”이라며 “그 은혜는 분골쇄신해도 갚을 수 없다”라고 찬탄한 이 말들은 모두 거짓이다. 왜냐하면 대혜가 수행한 간화선 등의 방법으로는 오매일여를 체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매일여나 무상정과 멸진정, 승묘경계나 사중득활(死中得活), 그리고 대원경지, 내외명철, 상적상조라는 의미의 현상들은 혜능의 선교(禪敎)에게는 지극히 바라는 바이겠지만 화두 정도의 수행으로 이를 성취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이 살림들은 모두 달마가 인도에서 가져 온 것으로 능가선이 추구하던 구경지 현상들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혜능과 대혜가 수행법을 바꾸면서 실낱같은 해탈의 가능성까지 송두리째 망가져 버렸다. 그런데 혜능과 그 제자들은 선교를 중국문화로 정착하는 나름의 위업을 달성하였는데도 부처와 달마의 계승이라는 정통성에 집착하고 있다. 또 가질 수 없고 재현시킬 수도 없는 수행과정 그리고 열반의 성스러운 현상까지도 탐내고 있다. 무슨 까닭일까.

 

9. 선법(禪法)은 쿤달리니였다

달마가 “중생을 개시오입(開示悟入)하게 할 것”이라며 혜가에게 전한 능가경은 열반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였는지 살펴보자.

“생사 열반의 차별상 일체가 모두 유⦁무를 허망하게 분별하여 있게 된 것이어서 얻을 바 없는 것임을 모르는 까닭에 미래에 근(根⁚감각기관)과 경계(境界⁚認識을 주관하는 마음의 대상)를 멸하게 되면 열반에 이르게 된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근은 감각기관을 의미하고 경계는 보이는 것들이므로 근과 경계는 곧 생각의 일어나는 현상이다. 생각이 멸한다면 무심이 되는데 이 무심이 열반이란 인식은 큰 잘못임을 나무라고 있다.

혜능은 바로 무심이 열반이고 해탈이어서 이를 종(宗)으로까지 삼고 있으며 성철은 혜능이라면 무조건 따르고 복종하여 역시 선문정로 첫 장부터 무심이 견성이고 열반이라 주장하고 있다.

능가경은 근과 경계에 이어 바로 “자지경계(自智境界⁚自心의 지혜경계)를 증(證)함이란 의지하고 있는 장식(藏識)을 전변하여 대열반 이루는 것임을 모르는 것이니라” 하며 열반이 이뤄지는 모습을 설명한다. 즉 사람들의 평상의식이 근본지로 확 뒤바뀌는 변화[轉依]가 있고 동시에 몸과 마음으로부터 이 경계를 스스로 증거[自證]할 수 있으면 이것이 바로 대열반을 이루는 것인데 이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능가경은 열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였지만 몇 페이지를 넘기지 않아 다시 말씀하신 다. “모든 식의 자성습기(自性習氣)와 장식(藏識)⦁의(意⁚제7식⁚마나식)⦁의식(意識⁚제6식)과 제견(諸見)의 습기에서 전의한 것을 나와 제불은 열반이라 하나니 이는 모든 것의 성품이 공(空)한 경계”라고 다짐하며 “열반이란 자심에서 증득한 성스러운 지혜로 행해지는 경계[自證聖智 所行境界]이며 단견과 상견, 유(有)다 무(無)다 하는 지견을 멀리 떠난 것” (卷第三集 一切法品 第二之三) 이라 말씀하신다.

능가경은 왜 열반이 이뤄짐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가. 장식이 전변돼야 열반이라 하는 것은 능가선 수행의 기본이었으므로 혜능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능가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육체와 마음의 영성이 갑자기 고양되는 현상, 즉 쿤달리니 각성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능가선의 기본부터 바꿔야 했으므로 능가경을 축출할 수밖에 없었다.

힌두교에서는 언제부턴가 쿤달리니가 석가모니 같은 성인들의 모태(母胎)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쿤달리니의 각성은 매우 희귀하며 큰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게다가 각성을 위해서는 천우신조(天佑神助)나 부처님의 선택적 특혜가 필요한데 설령 특혜를 받았다 하더라도 전의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거의 기대할 수 없는 행운이 따라야 하는, 참으로 극난한 수행이었다.

수행을 시작하면 1~2년 사이에 쿤달리니를 각성할 수 있어야 하며 각성 직후에는 감당할 수 없는 후유증으로 고통을 당하였다. 힌두교에서는 이 고통을 ‘깔리’라는 여신으로 표현하는데 그 포악함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하니 지대한 각성 후유증의 심각함을 알 수 있겠다. 그 고통 속에서도 꾸준히 수행을 하면 광란하던 의식이 1~2년이 지나면서 초의식(超意識) 상태로 서서히 바뀌게 된다.

수행자는 이 시점에 이르러서야 명상을 할 수 있는데 바로 오매일여라는 야릇한 감각, 또는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명상하기 위해서는 장소와 여건 등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 주위의 도움 등 조건이 참으로 까다롭다. 이것들이 잘 융합되어야 전의에 이를 수 있고 이로부터 10여 년의 새로운 깨달음의 수행이 시작된다.

쿤달리니가 각성하는 것 자체가 천우신조이고 깔리 상태에서 초의식인 두르가 상태로 되려면 부처님이 직접 호념이나 해야 수행을 계속할 수 있는 지극한 경지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전의 현상은 석가세존 이후 2500년이 지났지만 석가세존 본인과 4조 도신, 겨우 두 사람만이 혜택을 본 것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쿤달리니의 실태는 자연 각성일 경우일반적인 현상이다.

 

수행자들이 희구하던 쿤달리니의 인위적인 각성법이 발견되어 세상에 소개되었다. 상기(上氣) 등 부작용이 전혀 없으며 2년이면 쿤달리니 완성단계에 들어서는데 의식이 초의식으로 바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오매일여와 같은 감각이 한동안 몸을 지배하다가 명상 중의식이 뚝 끊어짐을 느끼며 잠시지만 생각이 없는 정[二無想定]에 들게 된다.

이 무상정에서 주위가 아주 밝고 맑으며 의식 역시 초롱초롱함을 자증하면서 계속되다 약 1년여 별 진전 없는 기간이 지속된다. 이 기간을 조사들은 크게 죽었다가 크게 살아난다는 사중득활(死中得活) 또는 승묘경계라 칭하는 것 같다.

이 다음 과정이 “번뇌에 오염된 제8식을 열반으로 이르게 하는 것”이란 의미의 바로 전의의 순간이다. 전의하면 밝고 맑은 휘황한 빛 속에서 초롱초롱한 의식이 관조하고 있다. 혜능은 이 현상들을 능가선사들을 통해서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므로 대원경지•내외명철•상적상조로 표현한 것 같다. 화두를 비롯한 어떤 방법이든 세상에 존재하는 수행법은 이와 같은 체험을 할 수가 없다.

 

전의하면 이로써 수행이 끝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로써 다시 새로운 부처의 깨달음 수행이 근 10년에 걸쳐 시작된다. 이처럼 오매일여, 이무상정을 해야 하는 아라한의 과정과 부처에 입문하여 공중무색의 완전한 부처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점오(漸悟) 점수(漸修)만이 가능한데 돈오(頓悟)와 돈수(頓修)라는 주장은 좌선하지 않고 적당히 그저 편하게 누리겠다는 논리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이 수행 중에 발현되는 현상들을 혜능 이하 정안종사들은 견성, 열반, 해탈이라 주장하면서, 이를 대원경지이고 내외명철하며 상적상조하는 자기네 살림이라고 구태여 대를 이어 외치고 있다. 더불어 성철스님이 이들로부터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며 열심히 부화뇌동한다. 기복과 천도의식에는 부처와 해탈이 가장 고귀하고 신성스럽게 보였던 탓일까.

 

玄 德 김 득 주

대한불교진흥원 2023년 하반기 4대 공모사업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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